동물권은 선동이고 동물복지가 현실인가?
동물 복지는 육류 섭취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육류 소비에는 식물에서보다 10배의 땅, 물, 에너지가 필요하다.
야생 동물 문제는 어떠한가? 땅에서 급감한 야생동물과 서식처를 알 것이다. 바다에서도 그 속도가 유사하다.
지구생명을 죽이는 종차별을 가려서는 안된다.
동물권을 주장하면 현실의 고통을 방치한다는 프레임은 혐오의 구조일 뿐이다.
페미니즘은 선동이며 가부장제는 그대로 두고 평등주의가 현실이라고 말할 것인가?
단순히 불쌍해서 동물복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이유는 종차별주의다. 동물권의 주장 없이 이것은 극복될 수 없다.
동물권과 동물복지는 분리된 것이 아니다.
동물복지는 당연한 것이며, 그 힘을 더해주는 게 동물권이다.
동물권의 주장이 동물복지를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복지에 관심을 갖게 한다.


노예 해방이 필요한 것이지 노예 복지가 대안이 아니다. 노예제란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안정적으로 10개를 빼앗기 위해 1을 돌려주는 것은 여전히 악일 뿐이다.
해방의 외침이 현실의 복지를 막는다는 이분법적 생각이 차별주의다.
지금 당장 해방이라는 비현실적인 주장 때문에, 빼앗았던 것을 조금이라도 돌려주는 일들이 사라질 것이라 겁내는 것은, 빼앗아도 되는 편에 서 있기에 발생하는 여유다.
오히려 더 많은 이가 해방을 외칠 때 복지도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억압자에게 저항할 때 분명 억압은 발생한다. 그러나 억압자에 침묵할때 그 억압은 당연히 더욱 거대해진다.
차별의 현실에 대한 현실적 대안은 차별을 허용하는 복지가 아니라, 차별이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