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대표적으로 생각하는 샬롬(평화)의 모습이다.
그런데 수용소 그대로의 유대인에게 나치가 웃으면서 어깨동무를 하자 그 포로가 웃고 있다.
웃고 있는 여자 아동 옆에서 조두순이 웃고 있다.
경우가 다르다고 생각되는가?
아니. 당시 나치에게도, 조두순에게도 그건 평화다.
이건 서로 맞서 싸우던 두 세력의 화해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위력이 있기에 상상할 수 있는 기만이다.
샬롬(평화)은 약자부터 소외되지 않는 해방이다.
편하게 그대로의 평화는 강자들의 기만이다.
빼앗던 이가 덜 빼앗는 양보를 하려고 하니, 지금도 빼앗기고 있는 이에게 요구하는 상호 존중은, 또 다른 폭행이다.
평화는 인간이 소에게 어깨동무하는 장면, 사자와 껴안는 장면이 아니다.
조두순이 하지 않은 것, 그러나 독일은 했던 것을
인간이 비인간 동물에게 되돌려주는 장면,
그 장소가, 그 관계가, 샬롬(평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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