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운동을 왜 하는지를 생각할때 떠오르는 사진이다.
물론 피해자는 새우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름대신 31번이란 숫자로 불린다는 저 소년이 떠오른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육식이란 것은 돈많은 나라 좀 더 얼굴 하얀 유색인종들이 가난한 나라 좀 더 얼굴 검은 유색인종들을 착취하는 일이다.
한우라고 이름을 붙이지만 그 사료는 결국 아마존의 산림파괴와 노예 노동에 의한 것이다.

동물이 그 본래의 삶을 살도록 하는 일에는 인간도 포함되어 있다.
다른 동물은 본래의 삶을 보장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인간 동물만이 본래의 삶을 서로 보장해 줄 수 있다는 말은 허구다.
인간해방이 동물해방과 다른 말이 아닐 때에야, 우리는 지구적으로 우리 사회가 착취하고 있는 이들 역시 중심에 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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