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운동 역시 시혜와 동정의 문제가 되기 쉽다.
동물권은 사회 구조적 문제 없이 말할 수 없다. 소수자성에 연대하는 운동들과 다르지 않다.
단순히 특정 종의 피해에 대한 고발이나 보호만 있다면, 이는 인간과 동물의 이분법 위에서 이뤄지는 동물보호운동에 가까울 수 있다.
(1) 정말 인간과 동물의 이분법에 저항한다면, 위계적 이분법에 저항하는 각자 다른 분야의 운동들이 서로 연결되는 것과 같은 연결성을 갖게 될 것이다.
이분법적인 운동이 아니라면, 타자화와 관련된 다른 분야에 대한 문제들도 동물권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2) 동물권 운동에 참여하는 인간은,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는 남성과 같다. 운동의 주 스피커가 자기 자신일 수는 없다. 동물로서 다른 동물과 만난 그 만남이 운동의 주체다.
남성은 포괄적인 페미니즘에 참여하게 된다는 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으로 참여하는 동물권에서는 포괄적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너무 특정한 동물권만을 말하고 있다면, 그 중심이 동물권에서 자기 자신으로 옮겨진 것일 수도 있다. 반려 동물 뿐만 아니라 철저히 비가시화된 축산 동물, 인간에 의해 사멸해 가는 존재들, 숲, 지구, 한편으로는 동물을 타자화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다가올 인간 동물 사이의 문제 등이 포괄적 영역이 동물권의 영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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