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와 돼지고기는 다르다.
돼지를 먹는 것과 고기를 먹는 것은 다르다.
돼지라는 존재를 먹는 것과, 상품으로서 고기를 먹는 것은 다르다.
육식동물의 육식은 연결된 존재를 먹는 행동이다.
대상화된 "고기"를 먹는 것은 모피코트 같은 산업일 뿐이다.
우리는 노예 노동을 정당한 노동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정당한 고용이 아니다. 노예 착취다.
산업의 노예화에 의해 생산되는 고기를 먹는 것은
정당한 육식이 아니다. 노예 착취, 학살이다.
싼 값으로 사용하는 이주민들의 노동, 아웃소싱의 착취는
그런 의미에서 "고기"와 같다.
우리가 하는 것은 육식이 아니다. "고기"를 먹는 것이다.
채식을 하더라도, 생식 혹은 생채식처럼 채식과 구분되는 용어가 있는 것처럼,
현대인의 대상화된 육식, 곧 "고기"를 먹는 행위는 다른 용어가 필요하다.
혐오를 기반으로 하는 육식이므로 "혐식"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동물권에서는 육식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이 여성혐오인 것처럼, 오히려 육식을 혐오로 왜곡하는 것은 오히려 "고기"를 먹는 이들이다.
여성을 대상화하여 소비하고 착취하는 여성혐오처럼, 육식혐오를 하고 있는 것은 고기를 먹는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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