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sns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연장되어 애도를 미처 얘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일을 생각해볼때, 저에겐 죽임당한다는 감각이 있습니다.
문화말살과 통제사회의 신자유주의. 그것으로 죽임 당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거기에 부역하는 공범이라는 감각이 있습니다.
가해자 정체성으로서 연대합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저는 이 일들을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의 부조리에 대한 고백 없이는 저는 애도를 소비할 뿐, 가닿지 못한다고 느껴집니다.

우리는 죽임 당하고 있습니다.
죽임 당하는 모든 이들의 이름이 우리입니다.
여기선 156명의 동물들이 죽었습니다.
사랑은 단순히 연민이 아닙니다. 제거하는 구조 앞에서 공동으로 제거되는 몸입니다.

이 사회는 문화말살과 통제사회의 죽음 앞에 더 촘촘한 문화말살과 통제사회를 대안으로 말합니다.
내가 부역하고 누리고 있는 신자유주의 그 가부장제만은 그대로 두고, 그것만은 지킬 수 있는 행정, 입법, 사법을 만들자고 합니다.

그 일들은 우리를 제거하고 나를 살립니다.
우리는 동물입니다. 그러나 그 가부장제 자본주의는 비동물 인간입니다.
우리는 동물입니다. 우리의 먹을 것이 오는 곳, 농촌, 빈곤국, 자연과 동등한 서식의 권리보다 소유의 권리가 권력이 되는 곳에서 나는 비동물입니다.
이미 내가 누군가의 서식에 등급을 두기에 문화가 말살되고 사회는 통제 됩니다.
내가 잘먹고 잘사는 것 자체가 명백한 가해입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서식의 몸입니다. 동물의 공동체 입니다.
그 우리가 있을 때 사실은 나도 있습니다.
골목 안에서 동물들이 깔려 죽었습니다. 우리가요.

나는 가해자 입니다.
언제나 죽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다는 부조리 안에서, 자살하지 말자며 나를 살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살아갑니다.
우리를 죽이는 건 더 근본적 자살입니다.
사랑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가해자 정체성의 연대 없이 서로 만나는 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정리가 될리 없어서 얘기를 꺼내지 못했는데, 여전히 정리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부조리한 죽음에 대한 애도는 그 죽음에 대한 이해가 작동하지 않는 부조리로 중첩되어 한 존재로 머무는 것입니다.
부조리. 나는 가해자 입니다. 고백이 있을 때에야 서식의 몸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죽임 당한 우리가 되어갈 수 있습니다.
그 부조리 속에서 애도를 마주합니다.
우리는 죽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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