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인간을 죽일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다.
물론 동물 살해와 그 시체의 취식은 분명 인간에 대한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것은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인간 살해와 동물 살해의 연결은, 살인에 대한 반대에 더욱 본질적인 힘을 더해준다.

또한 인간 살해와 동물 살해의 연결은, 마찬가지로 몇 분간의 혀의 쾌락으로만 접했던 식물의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운다.
당신이 먹고 있는 것은 다른 종류의 식물 사람이다. 그 런 감각은 소외되는 동물과의 연결을 통해 더욱 강해지는 종류의 것이다.

이는 세상과의 끊임 없는 소통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채식이 어떤 자격이 되어서는 안된다.
여기에 임신 중단이 연결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행하고 있는 육식도 마찬가지로 단지 개인의 의지 부족의 문제만은 아니다. 동물을 더 맛있게 느끼기 위해 육식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낙태죄 폐지가 임신중단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세상을 말들자는 뜻이 아닌 것처럼, 동물권 운동에 채식이 자격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육식에 대한 보장이 아니다.
오히려 채식이 자격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인간을 먹을 수 있다는 말이며, 이는 육식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채식하는 사람도 해당된다는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육식동물들에 대한 우리의 감정도, 인간중심적이라며 굳이 폐기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은 인간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을 먹을 수 없다

인간은 인간을 먹을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은 인간을 먹고 있다

인간에 대한 연대와 완전히 분리된 동물에 대한 연대는 없다.
우리는 이미 가난한 사람들의 인생 통째로 먹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가해자다. 모든 착취의 방관자다.
(그래서) 우리는 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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