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일이 기일인 이들을 축복했다.

사망일보다는 유통기한으로 기억될 이들,
어떤 존엄도 없는 학살로 죽음마저 빼앗긴 이들,
강제임신으로 태어나 6개월, 생일을 한번도 맞은 적 없는,
삶의 모든 축복도 빼앗긴 영혼들을 축복했다.

목 마른 이에게 물 주었다.
그렇지 않은 이는 물로 씻어 주었다.
내가 받은 세례에라도 힘이 있다면 그 힘으로.
생일의 축복이 있다면 그 축복이라도.

의미 없는 축복이라 생각할까.
곧 죽음을 앞둔 반려동물이나, 인간에게 기울어진 재판으로 안락사를 명령 받은 이들에 대한 축복은 이해할 것이다.
모든 축복을 빼앗겨 더 많은 축복이 필요할 이들에 대한 축복이다.

배부른 일이라 생각할까.
반대로 묻고 싶다. 우리끼리만 먼저 챙기는 돈 많은 백인들의 유토피아 만들어 갈때, 피부색 다른 이들이 더 내몰리지 않았나?
단지 육식에 의한 산림벌목, 노예노동만 말하는 건 아니다.
힘이 없기에, 나와 다르기에, 삶부터 죽음까지 모든 것을 빼앗겨도 되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을 통해
결국은 우리 안에서도 더 거대한 위계와 내몰림이 생기지 않았나?
나중에가 아니다. 지금 함께다.
동물권은 인간동물권을 포함한다.

내가 안수한 이들이 도살장에 밀려들어가며 비명을 지른다.
누군가의 생명을 거둘 때도 기도를 한다. 죽임당할 그도 존엄하기 때문이다.
그 죽음이라도 돌려주고 싶었다. 비명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곳에서 생명평화 100배를 드렸다.

육식이 아니다. 학대와 학살이다.
비명 소리와 악취 앞에서 기도해 보았으면 좋겠다.
거기서 오는 건 잘 보내주는 애도 같은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선명한 책임감이다.

우리의 기도로 도살장의 사람들도 드디어 죽음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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