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보이는가?

여기 그 완전한 절망 속에서도 살고자 하는 생의 저항도 함께 있다.
어느 순간 무기력할 지라도, 그 지옥같은 환경 속에서도 지금까지 오직 생명으로 그 생을 지켜온 위대함도 있다.

완전히 무기력하고 완전히 불쌍한, 수동적인 감정과 고통의 존재로만 보는 것은, 어쩌면 이미 그들을 위계로 보고 있는 거 아닌가?
그래서 그저 나의 공포와 고통을 투영하는 불쾌한 영상물로만 보는 것은 아닌가?

마지막, 오직 목숨 만이 남았다면 그 목숨으로 폭력 앞에 저항하는 그 생명을 본다.
그 생명은 역설적으로 폭력을 고발한다.

그들의 무력과 끔찍한 몸을 보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평범한 악의와 폭력 자체의 끔찍함을 본다.
나의 공포가 아닌 그들의 공포에 함께 한다.

불쌍함으로만 타자화된 몸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위대함을 그저 감정과 고통 있는 고기 정도로 보게 하려는 그 실체를 직면한다.
내 두려움, 내 고통만 덧씌우면 그 현실을 없는 것처럼 굴기는 더 쉽다. 가해자이면서 회피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대상화다.

그 위대함을 볼 것이다.
그래서 그 위대함을 억눌러 두려움과 고통 속에 있게 하는 그 폭력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두려움과 그들의 고통을 함께 비명지를 것이다.
그래서 분노한다. 연민이 아닌 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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