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실 돼지가 어떻게 생긴지 모른다.
자본약탈에서 구해진지 1년이 된 새벽이의 눈은 작다.
그러나 도축장 돼지들, 그러니까 우리가 돈을 꽂아 넣는 돼지 머리의 눈은 크다.
2차 성징이 있기 전, 초등 저학년 정도 때 죽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모습은 사실 돼지 아동의 머리다.
게다가 고기로 만들기 위해 비만으로 만든.
사실 둥근 머리에 돼지코가 아니다. 두꺼운 사슴 같이 길쭉한 얼굴형에 코는 더 길쭉하다.
성경을 비롯해 많은 문화권에서 돼지의 식육을 꺼린다. 양이나 소의 경우와는 달라서 사실 돼지는 인간의 생활 환경과 밀접하게 지내기 어려운 종이다.
따라서 축산이란 접근을 하기에는, 어떤 면에서는 개보다 더 비도덕적이다.
나는 그런 걸 양심이라고 부르고 싶다. 최소한 우리는 진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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